중국·대만 등 8개국 800명 일가 참여
단일 성씨로 세계대회… ‘백씨가 유일’
매 2년마다 개최하는 세계백씨종친연의대회가 2024년 8월 29일부터 2박 3일 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근교의 세랑고에서 한국 등 7개 나라가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난해 12월 31일 폐막하였다.
이번 대회는 세계 8개국(한국, 중국, 대만, 싱가폴,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에서 온 800여 명의 일가들이 한 씨족임을 인식하면서 정을 나누고 상호 문화를 소개하며 종친돈목을 고양시키는 세계사에 없는 친목대회를 가졌다. 차기 대회는 중국 정주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한국 참가단 단장 석기 회장은 축사에서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우의를 다지게 된 것은 행복한 일이며, 이러한 모임에 한국백씨종친 50여명과 함께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성대하게 준비하신 말레이시아 백씨공회의 노력에 대하여 깊은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라면서 “이 기회에 한국백씨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드리면, 시조이신 백우경 할아버지는 당나라 소주사람으로 당나라 시성인 백거이와는 사촌간으로서 서기 780년에 당나라로부터 신라로 망명해 오셨고 그 후손들은 날로 번창하여 지금은 남한에 약40여만명, 북한에 약30여만명, 도합 70여만명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세계백씨종친연의대회의 정신이 후손들에게도 계승되기 바라며 아울러 우리 백씨종친들이 오래오래 번성하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한편, 석기 회장은 각 국에서 온 각국의 7개국 대표단의 단장과 세계백씨종친회 사무총장 백검에게 “동기연지(同氣連枝)”라는 기념패를 대한민국 수원백씨중앙종친회 회장 백석기의 명의로 전달하였고, “대한민국 수원백씨 소개(大韓民國 水原白氏 紹介)”라는 인쇄물을 배포하기도 하였다.
한국 참가단 53명은 4박5일 일정으로 8월29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익일 30일에는 환영대화와 31일에는 9차 대회의 교류회 및 환송 만찬에 참석하였으며, 짬을 내어 켄팅하이랜드, 이스람 사원, 왕궁, 메리데카 독립광장, 힌드사원 바투동굴, 말레시아 국립박물관 등을 관광하였다.
제9차 세계백씨종친연의대회에 다녀와서…
백태남(白泰男)(경기도 종친회 대의원)
제9차 세계백씨종친연의대회가 지난해 8월 31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됐다. 1986년에 설립된 말레이시아 백씨공회가 2018년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개최권을 유치함으로써 이번에 개최하게 됐는데, 그 주요 목표를 백씨 선조의 유지를 계승하고 백씨 가문의 문화를 널리 선양하며 백씨 종친 간의 정의를 두텁게 함에 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수원백씨중앙종친회 집행부에서 모든 사전 준비 사항을 상세히 통보해 줌으로써 큰 어려움 없이 출국 수속을 할 수 있었고, 현지에서는 백석기(白錫基) 회장과 백승룡(白承龍) 조직부장이 참석자 52명을 잘 인솔함으로써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일정 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8월 29일 오후 4시 4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우리 일가들은 10시 20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해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이동했다.
이동 도중 차내에서 가이드로부터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정진아(鄭珍娥) 통역사라는 그 가이드는 25년 전 말레이시아에 왔다가 그곳 자연환경과 국민성이 아주 마음에 들어 공무원인 현지 말레이시아 남성과 국제결혼을 해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반도 남부와 보르네오섬 북부에 걸쳐 있는 국가로, 면적은 약 33만 ㎢, 인구는 약 3,300만 명이며, 인구 구성은 말레이계 62.7%, 중국계 21%, 인도계 6%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어는 공용어인 말레이어 외에 영어·중국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국교인 이슬람교 외에 불교·힌두교를 믿고 있다.
화폐단위는 링깃(Ringgit)으로 우리나라와의 환율은 300원 내외이고,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우리나라와는 1960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우리 교민이 약 2만 명 거주하고 있으며, 매년 한국에서 35만여 명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와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1982년부터 3년간에 걸쳐 시행한 페낭교(Penang橋) 건설공사인데, 당시 현대건설이 공사 수주에 성공해, 교량 밑으로 대형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14.5㎞의 사장교(斜張橋)를 완공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위를 높였고, 이후에도 삼성물산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118층 679m의 메르데카 118 빌딩(우측 사진)을 지었고, 극동건설에서는 유명한 쌍둥이빌딩을 건설해 우리 국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30일 아침 식사 후 말레이시아가 자랑하는 겐팅하이랜드 관광에 나섰다. 해발 2,000m의 산 정상에 위치한 카지노 및 스카이월드를 구경했는데, 각국에서 오는 수많은 여행객들을 43대의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태워 나르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오후 6시부터 환영연 교류회가 개최됐다. 주최국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한국·중국·대만·필리핀·미얀마·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7개국에서 1천여 명의 백씨 일가들이 모여 성대한 환영회가 이루어졌고, 백석기 회장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이 대회 개최 공로자들에게 기념패를 수여하는 행사가 장시간 이어졌다.
8월 31일 오전 8시부터 이번 공식 행사인 연의대회(聯誼大會)가 화종(Huazong) 빌딩에서 개최됐다. 참가 일가들이 대회장을 꽉 메운 가운데 우선 말레이시아 백융성(白隆成) 종친회장의 환영사가 있었고, 한국 백석기 회장을 비롯한 각국 대표들의 축사가 이어졌는데, 특히 홍일점인 백아나(白亞娜) 인도네시아 회장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식후 참가자들의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는데, 인원수가 많은 탓으로 일반 사진기사의 사진기로는 그 전체 모습을 담을 수 없어 드론이 하늘을 날며 촬영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식이 끝나고 우리 일행은 쿠알라룸푸르 시내 관광에 나서 이슬람사원과 왕궁(王宮)을 관람하고 다시 교류회 석식(夕食) 만찬에 참석해 이별의 인사들을 나눴다. 다음 대회는 2026년에 중국 정저우(鄭州)에서 개최된다고 하니, 모두들 그때 다시 상면하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9월 1일 출국을 앞두고 힌두사원 바투(BATU) 동굴을 관광했는데, 이곳은 힌두교의 최대 성지로 동굴로 올라가는 272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그동안 지은 죄를 모두 사(赦)한다고 해 우리 일행은 더위를 무릅쓰고 한 계단 한 계단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올라가 참배했다.
이어서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말레이시아로부터 벤치마킹했다는 프트라자야(Putrajaya) 행정수도에 들렀는데, 이곳은 우리 세종시와 비슷한 성격의 도시로, 행정부는 물론 의회와 법원까지 모두 이전했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총리 관저는 이슬람사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이채로웠다.
9월 2일 전날 밤 10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는 아침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모두들 무사히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것을 자축하면서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출국장을 나왔다.
건의사항 이번 대회 참가는 외형상 잘 끝냈으나 앞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을 주위로부터 많이 들어 이 지면을 빌어 수원백씨중앙종친회 집행부에 몇 가지 고언(苦言)을 드린다.
첫째, 통역 및 자막 문제이다. 주최국이 중국 영향권에 있어 중국어로 모든 행사를 진행했고, 가끔 영어 자막 처리를 했지만, 한국어 통역은 물론 한글 자막은 전혀 없어 대회 진행 내용을 잘 알 수 없었다. 참가국 중 우리 한국이 가장 선진화된 나라인데, 주최 측이 왜 한국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는지 의아해했고, 모두들 불만을 토로했다.
둘째, 참가자 1000여 명 중 우리 일행은 54명뿐이었다. 종친회에서 개인 자격으로 참석하고 경비는 개인 부담이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 관광이 아니고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한 일가들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종친회 측의 후원 또는 보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야 다음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더 많은 일가들이 참석해 한국 백씨의 실상을 각국에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우리 일행 54명은 3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다닐 뿐 아니라 숙소도 각각이어서 마치 이산가족처럼 며칠을 보내고 왔다. 멀리서 같이 온 일가들과 말 한마디 나눌 기회가 없었고, 차 한잔 함께 마실 수가 없었으니, 대단히 섭섭한 일이었다. 차후 중앙종친회 측의 선처를 바란다. 김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