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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장기면’자연·역사·문화 발길 곳곳마다 산재
 
운영자 기사입력 :  2019/01/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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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영자


 장기(長鬐)란 고을은 신라시대 지답현이란 이름을 얻은 이래 기립, 기구, 봉산, 장기, 지행으로 불리어 오다가 1991년 다시 장기로 그 이름을 찾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포항시 남구 장기면 산서리 새터란 마을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장기에 사람이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장기현은 지금의 장기면과 동해면 일부(장기현 내북지역), 구룡포읍, 대보면(장기현 외북면지역)과 남으로는 현 경주시의 양남면(옛 경주군 남도면), 양북면(옛 경주시 분도면)까지도 아우르는 지역을 관할하기도 했다.
지금은 장기면으로 축소돼 버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현기였으므로 역사적 유물이 많이 산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교의 대가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실학파 태두(泰斗)인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등 많은 유배인 들이 남긴 특색 있는 고을이기도 하다.
포항시는 최근 이곳에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을 조성했다. 체험촌은 오는 3월 준공예정이지만 지난해 연말부터 일반인들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포항에서 오천읍을 지나 929호 지방도를 따라 감포방향으로 가다 보면 장기면사무소 바로 못미쳐 왼쪽 야산 아래 위치한다. 유배문화 체험촌, 장기읍성, 고석사를 둘러본 뒤 바닷가로 옮겨 경치가 아름다운 장기 일출암에서 사진 한 컷 남겨보면 어떨까.

▲     © 운영자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장기로 결정된 유배인들은 모두 149회 211명이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 등 석학들로부터 중앙정계에서 내노라하던 정객들이 머물면서 학문연구와 문풍이 되살아난 대표적인 곳이다.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는 △우암적거지 △다산적거지 △피못골천 △유배체험마당 △계류 △자연치유원 △주차장, 관리사무소 등이 조성돼 있다.
먼저 우암(尤庵)은 69세가 되던 조선조 숙종 원년(1675) 윤(閏) 5월에 장기현에 옮겨와 한 달 뒤인 6월 11일 위리안치(圍籬安置) 돼 4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그는 장기에서 주자대전차이(朱子大全箚肄)와 이정서분류(二程書分類) 등을 저술했고, 취성도(聚星圖)를 완성했으며, 정포은선생신도비문(鄭圃隱先生神道碑文)을 비롯한 많은 양의 시문도 창작했다.
우암이 장기에 귀양 온 것은 본인에게는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장기와 장기인 들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무릎 장기인들은 우암을 통해 유학의 진수와 중앙 정계의 동향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접할 기회를 가졌고, 그래서 장기에 우암인맥이 형성됐다.
아울러 궁벽한 해곡(海曲)이 예절을 숭상하는 유향(儒鄕)이 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다산(茶山)이 유배로 장기 마현 땅에 도착한 것은 신유년(辛酉年 1801) 3월 9일이었다.
그는 마현방 성선봉(馬峴坊 成善封)의 집을 배소(配所)로 해 유배생활을 하다, 큰형 약현(若鉉)의 사위인 황사영(黃嗣永)이 작성한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10월 20일 서울로 압송됐다.
다산은 220여 일 동안 장기에 머물면서 장기고을 백성들의 생활상과 고을 관리들의 목민행태(牧民行態)를 글로써 남겼다.
장기농가10장(長鬐農歌十章)과 기성잡시(鬐城雜詩) 27수, 아가사(兒哥詞), 해랑행(海狼行), 오적어행(烏賊魚行), 타맥행(打麥行) 등 130여 수에 달하는 시작(詩作)은 토속적이면서 사실적이고, 비판적이면서 은유적이다.
이밖에도 이아술(爾雅述), 기해방례변(己亥邦禮辯), 촌병혹치(村病惑治) 등의 서책도 저술했으나 유실돼 아쉽게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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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읍성(長鬐邑城)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에 자리한 장기읍성은 이 고장의 진산인 동악산(東岳山)에서 동쪽으로 뻗은 등성이에 있으며, 그 언덕 아래쪽으로는 장기천이 동해로 흘러 현내(縣內) 들판을 형성하고 있다.
이 성에 관해서는 여러 기록이 있지만 정작 정확히 언제 축성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 현종 2년(1011)에 토성(土城)으로 축조했다가 조선 세종 때 와서 석성(石城)으로 개축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다.
장기읍성은 일제(日帝)에 의해 성(城) 안의 모든 관아 등 시설이 파괴되고 단지 향교만이 이 고장 주민들에 의해 복원 유지되고 있을 뿐, 잡초에 묻힌 성벽(城壁)은 허물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조선환여승람'과 '장기현읍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성내에는 무인의 무술 연습도장인 양무당(養武堂), 포교·군교 등 장교들의 집무소인 군관청(軍官廳), 이속(吏屬), 아전·이방들의 집무소인 인이청(人吏廳), 현감 군수의 직인과 각종 인장을 관리하던 곳인 지인청(知印廳), 부역 등을 징발하던 차역청(差役廳), 동헌인 근민당(近民堂), 그밖에 조일헌(朝日軒), 조해루(朝海樓), 향사당(鄕射堂)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건물은 을사늑약 이후 일인들이 대부분 차지해 일본순사 주재소, 세무서, 우체국 등으로 사용했다.
이에 분개한 장기출신의 의병장 장헌문(1870~1926)을 비롯한 산남의진 소속 의병들이 1907년과 1908년에 걸쳐 야밤에 몰려와 이곳을 습격해 일본인 및 한국인 순사 수명을 죽이고 총칼을 약탈한 뒤 방화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 근민당만 남기고 성내에 있던 다른 건물들은 소실됐다고 전한다.
근민당은 1922년 철거해 장기면사무소 이건(移建) 해 현존하고 있다.
읍성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단종(端宗) 2년(1454)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는 성의 둘레가 174보(步)이고 성안에 우물 2곳이 있다. ▲예종(睿宗) 1년(1469)에 지은 경상도속선지리지(慶尙道續選地理誌)에는 세종 21년(1439)에 돌로 쌓고 둘레가 3,664尺이고 높이는 12尺이며 샘(泉)이 두 곳이고 못(池) 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고, 군창(軍倉)도 있다. ▲중종(中宗) 25년(1530)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석축(石築)을 하고 둘레가 2,980尺이고 높이는 10尺으로 우물이 네 곳이고 못이 두 곳이다. ▲구읍성이 현의 남쪽 2里에 있으며 돌로 쌓아 그 둘레가 468尺이고 높이는 12尺이고 샘이 두 곳 있다.
이상의 네 가지 기록에서 성의 규모를 보면 모두 다르게 돼 있다. 그러면 현존하는 읍성의 길이와 면적은 얼마나 될까?
1991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작성한 '장기읍성지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둘레가 약 1.3㎞이고 성내면적은 약 8만1738㎡(2만4726평)으로 나타났다.
현재 읍성 안에는 민가 16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주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 결과를 근거로 1998년부터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의 부족으로 지금까지 20~30% 정도 복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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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사(古石寺)
고석사는 장기면 방산리(芳山里) 망해산(望海山, 205m) 아래에 있는 사찰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경주에 있던 궁전 동쪽에서 세 줄기의 서광이 3일간 계속해 비치므로, 그 빛의 발원지를 찾게 했더니 망해산 아래 지금의 고석사 바위에서 나오는 빛이었다고 한다.
왕이 태사관을 시켜 바위를 깎아 불상을 만들게 하니 지금의 마애 미륵 의좌상(통일신라시대)이 만들어 지게 됐다.
이전에는 약사여래불로 불리었으나 몇 년 전에 수리되기 전의 불상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을 한 결과 우리나라에 3번째로 발견된 의자에 앉아 있는 형태의 아주 귀한 석불로, 동국대 문영대 교수(미술사학)는 보물급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석불을 봉안한 법당 보광전(普光殿)은 주심포(柱心包) 집으로 정면 3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전설 이외에는 정확한 연혁이나 사적을 알 수 없다.
한편, 이 절 이름은 옛 바위에서 서광이 발했다고 해서 고석암(古石菴)으로 불러 오다가 1962년에 고석사로 개칭했다. 이종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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