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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지급기한이 지난 로또 이야기”..
신재일 칼럼

“지급기한이 지난 로또 이야기”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5/04/28 15:58 수정 2025.04.28 15:58

집안을 정리하다가 색이 바랜 로또 한 장을 발견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했으면 용지가 변색이 될까 싶었다. 그러나 글씨는 뚜렷해서 번호확인은 가능했다. 검색을 해보니 5천원에 당첨이 되었다. 알고 보니 작년에 딸이 여행을 다녀오다가 길거리에서 복권가게를 보고 재미삼아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5천원을 현금으로 바꾸자기는 좀스러울 것 같고, 다른 로또 5매와 교환하면 될 것 같다. 급할 것이 없어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난주 시내에 갔다가 복권 가판대가 있기에 다시 생각이 나서 교환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급을 거부당했다. 지급기한이 지났다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지급기한은 추첨일로부터 1년인데 그동안 시간이 흘러 1년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아쉽지만 5천원 때문에 목숨걸 일도 없고 해서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당첨금이 진짜 인생역전을 할만한 금액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포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돈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다른 노력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관련 규정이 있기 때문에 별 수 없다.
5천원은 포기해도 별 탈 없지만 큰돈이라면 억울한 생각에 없던 병도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당첨금이 단돈 5천원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그런 돈이었으면 그렇게 잊고 그냥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긴 하다. 게다가 언론을 검색해 보니 큰돈에 당첨되면 공돈이 생겼다며 흥청망청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례도 있어 로또 당첨이 승자의 저주라는 말도 나온다.
생각난 김에 그 자리에서 5천원을 더 투자하여 로또 5장을 다시 샀는데 주말에 확인해보니 하나도 당첨되지 않았다. 그냥 5천원만 날린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기는 힘들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로또 당첨을 기회에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괜찮은 기회는 로또 당첨처럼 오기 어렵다는 비유도 있다. 현대사회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성공한다. 문제는 이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면 어렵게 만난 기회를 잡지 못한다.
때로는 기회가 왔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학생시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을 자주 인용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다음 구절아 있었다. ‘기회는 달아나기 쉽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는 앞에서만 머리까락이 있어 잡을 수 있으나 뒷머리는 대머리라서 지나가면 잡을 수 없고 날개가 있어 빨리 사라진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배웠는데 정책의제 설정과 관련하여 쓰레기통 모형이란 말이 있었다. 느슨하고 자유로운 조직에서는 구성원의 의사가 결정되기 어려운 이유는 의사결정 과정이 쓰레기통처럼 뒤죽박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참여자의 관심과 기회, 해결책, 노력 등이 같이 모여질 때 비로소 통일된 하나의 의사가 결정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평소에는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합쳐지지 않아 기회가 별로 오지 않는다. 그리고 기회를 한번 놓치면 다시 잡기 어렵기에 쓰레기는 여전히 쓰레기로 남는다. 로또 자체가 임의로 선택한 번호의 조합이 맞아야 당첨이 되는 것이니 당첨과정이 쓰레기통 모형처럼 우연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안이다. 당첨번호를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로또가 아니라 사기일 뿐이다.
퇴직 후에 있을 인생 2모작을 준비중이다. 찾아보니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길들이 생각보다 어렵다. 조건들이 만만찮다. 미리 알았거나 준비했으면 잡을 수 있었던 기회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준비가 없었기에 잡을 수 없어 아쉬움이 많다. 평소에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데 게을렀다.
그런데 다시 로또의 지급기한의 문제로 돌아와서 1년이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법적으로 복권 당첨금의 소멸시효는 1년이라지만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소액의 금엑은 잊어버리고 지나버릴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위한 복지기금으로 활용한다고 하니 기부한 셈치고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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