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43가구 중 70% 피해
유일한 생계 과수원 잿더미
"사과나무 열매가 다시 맺히고 팔기까지 5년 걸려요.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합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괴물산불'이 짚어 삼킨 청송군 진보면 괴정1리 마을 주민 박모(65)씨는 이렇게 말했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인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괴정1리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괴정1리 마을은 화마로 검게 그을린 주택과 사과 과수원 등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유령마을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큰 소나무들이 불에 타 부러지거나 탔으며 마을에서는 돌아다니는 주민이나 흔한 길고양이 조차 볼 수 없었다.
박씨는 "마을 내 전체 43가구 중 70%가 전소됐고 나머지 집들도 무너져 내렸다"며 "주민들 모두 하루 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다"고 토로했다.
괴정1리 마을 주민들은 이번 산불로 인해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또한 지난달 25일 산불이 덮친 후 마을 내 전기가 모두 끊겼다. 전날(30일)부터 전기가 다시 들어 오기 시작했다. 마을주민 50여명 중 진보문화체육센터에 6명, 괴정1리 경로당 6명이 대피했으며 나머지 주민들은 친척집이나 타 지역으로 몸을 피했다.
박씨는 "마을 자체가 70~80대다. 젊은 층이라고 해봤자 60대인데 몇 가구 안된다"며 "노인들은 이제 갈 곳이 없어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특히 괴정1리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자 유일한 경제활동인 사과 과수원이 불에 타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괴정1일 마을의 경우 사과 농사가 잘 되면 한 해 2~3억원, 보통은 1억원의 재배 후 판매한다.
하지만 이번 산불이 과수원은 덮쳐 사과나무가 모두 불에 타거나 돌픙에 전부 부러졌다.
주민 이모(66)씨는 "이제 우리 마을은 먹고 살 길이 없어졌다"며 "사과 농사가 유일한 마을의 생계수단이었는데 이제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고 했다. 또 "사과 농사는 나무를 심은 후 3년째 되면 약값 정도 벌고 5년이 돼야 열린 사과를 수확해 가져다 팔 수 있다"며 "다시 사과를 재배해 내다 팔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이제 5년 동안 돈도 못 벌고 있는 돈 마저 날리게 생겼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은 청송군에 사과농사 보상보다도 당장 생활할 수 있는 임시 거주지를 마련해 주길 바라고 있다.
박씨는 "군에서 컨테이너 접수를 받을 거라고 연락이 왔다"며 "주민들이 몸을 피하고 그나마 쉴 수 있도록 임시 거주지라도 나라에서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청송은 이번 산불로 산림 9320㏊가 소실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은 지난 25일 오후 4시35분께부터 강풍을 타고 청송군 파천면, 청송읍, 진보면, 주왕산면, 안덕면 일원을 덮쳤다.
화선 길이는 176㎞까지 확대되면서 4명이 숨지고 산림·임야 9320㏊가 소실됐다. 주택 770동 및 일반창고 179동, 농가 951호가 불에 탔다.
농작물 178㏊(사과 164.5㏊, 자두 13.5㏊), 축산 65개소 719마리(염소 657마리, 소 13마리, 돼지 4마리), 양봉 1512군도 피해를 입었다. 뉴시스
영국 찰스 3세 “한국 산불 피해 애도 표해”
모친 하회마을 방문 언급
“주민들 따뜻한 환대 기억”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경북도와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산불 피해에 모친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안동 방문을 언급하며 애도를 표했다.
찰스 3세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발표한 메시지에서 "한국 남동부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산불 소식을 듣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찰스 3세는 "1999년 제 모친이 국빈 방문했을 때 이 지역분들이 보여주신 따뜻한 환대를 기억하고 있다"며 "이번 화재 규모,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분들의 고통, 귀중한 문화유산에 끼친 끔찍한 영향을 그저 상상해 볼 뿐"이라고 애도했다.
이어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를 보낸다"며 "집을 잃은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특별한 기도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지원과 도움을 제공하는 매우 용감한 응급 구조대원과 지역사회"를 언급하며 마음을 전했다.
찰스 3세의 모친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9년 4월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영국 국가원수의 방한은 1883년 국교를 맺은 이래 처음이었다.
특히 73번째 생일날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고, 전통 궁중음식 등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대접받아 화재가 됐었다. 뉴시스
영해휴게소 식당가, 소방관 식사 제공
산불피해 복구전까지 무료
영해휴게소 식당가는 "영덕 산불진화를 위해 오신 소방관 분들을 위해 힘내시라고 복구전까지 무료로 식사 대접을 한다."고 밝혔다.
김분선 대표는 "제 고향 영덕 산불화재로 많은 분들이 연락해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라며 말했다.
또한, "큰 도움은 되진 못해도 뜻깊은 일에 동참하고자 전국에서 영덕으로 애쓰시러 오신 소방관 분들에게 복구전까지 무료로 식사대접을 하겠다."리고 전했다. 박두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