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일간경북신문

소설을 읽지 않는 자의 변명..
오피니언

소설을 읽지 않는 자의 변명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4/10/21 15:39 수정 2024.10.21 15:40
신 재 일 수필가

올해 우리나라 최초로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다. 출판업계에서 이를 계기로 독서 붐을 기대하고 있다. 인쇄소는 그의 책을 다시 찍어내기 바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 노벨상을 타기 전에는 몰라서 읽지 않았고 지금은 책을 구할 수 없어서 읽을 수 없다.
그보다는 원래 소설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통속 소설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읽지 않고 심오한 책은 내용은 어려워서 읽지 않는다. 지금 나이에 난해한 고차원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정서가 메마른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사실 나는 나름대로 독서를 많이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1년에 적어도 30권 정도는 읽는다. 블로그에 독서평도 쓰고 있다. 읽는 책이 주로 과학이나 철학, 역사와 관련된 책이다. 고난이도의 전문서적은 아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은 부담없는 수준이다. 소설만은 읽지 않는다.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저자에게 압도당하는 것이 싫어서다. 작가의 주관이 너무 뚜렸하고 일방적인 전개라서 짜증이 난다. 억지 상황으로 내 신념과 다르게 조작된 내용도 있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도 불쾌한 느낌을 참으면서까지 읽을 수는 없다. 비슷한 이유로 영화나 드라마도 안 본다. 드라마 작가의 독재를 참지 못한다.
사상적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중립적인 작품도 없지는 않지만 일일이 읽어보고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함부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허구가 인정되는 문학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읽지만 않을 뿐이다.
SNS에 노벨상 작품에 문제가 있다며 딴지를 거는 지적을 볼 수 있다.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색은 입장이 다른 사람에겐 불편한 내용이다. 찬반이 있으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비슷한 사례로 미국에서 노예해방에 불을 지핀 스토우 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같은 소설은 노예 존치론자에겐 횡포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소설 대신에 주로 과학 지식이 포함된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 필요한 부분만 읽을 수도 있고 균형잡힌 지식으로 스스로 판단할 여지도 있다. 그렇다고 영혼없는 내용도 아니다. 작가가 아닌 나의 영혼을 담을 수 있다. 문학적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요즘 나오는 잘 쓴 과학 에세이는 뜻만 전하는 건조체가 아니다. 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글이 많다. 문학적 표현은 문학인 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담으로 대작 소설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 소설 중에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꼽는데 유명하다 보니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주인공의 성격이나 줄거리를 다 알 것 같지만 결말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은 이외로 거의 없다고 한다.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 뿐만 아니라 아예 책 자체가 읽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명한 서점들이 많이 문을 닫았다. 책이 읽히지 않은 이유는 책에 담긴 사상이나 주제 때문이 아니라 종이와 활자인쇄라는 형태 때문이다.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종이 인쇄물은 인기가 없다. 요즘 젊은 층들은 스마트 폰으로 보는 쇼츠 같은 짧은 영상을 선호한다.
책을 읽지 않아서인지 요즘 젊은 학생들의 문해력이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뉴스를 보면 한자어로 된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해프닝이 나온다. 문자로 된 유머도 한물갔다. 내가 젊을 때 인기있었던 고급 개그도 요즘 통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기발하고 재치있는 유머가 ‘아재개그’라며 구닥다리로 폄훼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직 종이로 인쇄된 책을 좋아하는 최후의 보루로 자처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소설이 아니다.
어쨌든 이 소설이 대단한 작품이고 우리나라 국위를 선양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주변에서 누군가 다 읽고 빌려 준다면 유명한 작품이니 한번쯤 읽어볼 의향도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사서까지 읽을 계획까지는 아직 없다. 그러기엔 너무 바쁘다. 흥미가 없다기보다는 읽을 다른 책이 많다.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책꽂이에 많이 꽂혀 있다.
다만 이번 노벨상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독서문화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확실하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다 지나기기 전에 소설이든 뭐든 책을 한권 쯤 읽어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